지난주 미래 전기차 분야 투자를 한꺼번에 몰아서 발표한 현대차그룹이 향후 풀어놓을 투자금이 그룹 산하 양대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기아의 4년치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8일 국내 전기차 분야에 오는 2030년까지 2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사흘 뒤인 21일에는 55억 달러(6조3천억원)를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 및 배터리셀 공장 등 전기차 생산 거점 설립 계획을 공개했다.

이러한 국내와 미국 투자금을 합하면 총 27조3천억원에 달한다.

23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005380]의 최근 4년간(2018∼2021년) 영업이익은 15조1천13억원이며, 같은 기간 기아의 영업이익은 10조2천993억원이다.

양사의 4년간 영업이익을 더하면 25조4천7억원으로 향후 전기차 투자 금액이 이보다 많은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4년간 벌어들인 돈에 맞먹는 금액을 전기차에 쏟아붓기로 한 것을 놓고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급속한 전동화 추세 속에서 적시에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 분야의 경우 현대차그룹이나 외국의 유력 완성차 업체나 출발 선상이 같고 품질 면에서는 오히려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선제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향후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전기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향후 늘어나는 물량을 집어삼키기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진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투자처로 미국을 고른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북미 시장에서 완성차를 팔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했다는 진단(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이 나온다.

아울러 미래차 분야 기술력에서 미국이 세계 1위인데다 기업 간 자유로운 협력이 가능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고 미래차 공급망도 훨씬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미국을 골랐다는 분석(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투자 우선’을 강조하고 있다. 전기차 분야에 대한 국내 투자 금액이 훨씬 많고, 분야도 인프라 구축까지 포함해 광범위하다는 것이 현대차그룹 입장이다.

미국 투자를 놓고도 브랜드 이미지 상승과 수출 증대, 부품산업 활성화 등 국내 선순환 효과 등을 내세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해외 투자를 하면 국내에도 고용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에 투자하면 한국도 같이 투자가 늘어난다고 봐야 하고, 그래서 긍정적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과거 미국 앨라배마 공장 가동 후 해외와 국내 생산이 모두 늘어 완성차와 부품업계가 동반 성장한 ‘앨라배마 효과’ 재연을 기대하고 있다.

2005년 앨라배마 공장 가동 후 연간 판매량이 2배 이상 증가하고, 해외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던 국내 부품업체들도 수출액 등이 상당히 늘었으며 국내 생산 및 고용까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번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부품업계와의 상생 발전 측면에서 현대차그룹과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김필수 교수는 “부품업계는 (완성차 업체와) 동반 진출하고 있어서 부품 업계 쪽에서는 혜택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이호근 교수는 “부품 생산의 원천기술은 국내 기업들에게 있기 때문에 (미국 현지에 진출한) 부품 기업들의 부가가치 창출은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에도 당연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전기차 부품의 경우 국산화가 아직 덜 돼 내연기관 시대만큼의 수출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현대차그룹이 기존에 함께 연구·개발해온 부품 업체들을 견인해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