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대표적인 인도주의 위기 도시로 꼽힌다.

한때 활발한 물류항이자 제철생산 중심지였던 마리우폴은 두 달 가까이 러시아군에 포위되면서 도시 90%가 파괴돼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변했다.

침공 전 인구가 45만명에 조금 못 미쳤던 마리우폴은 현재 약 10만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식량이나 식수, 전기 등이 끊겨 기본 생활조차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리우폴을 떠난 사람과 살해된 주민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재 마리우폴에서 살해된 민간인은 최대 2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민들은 도시 거리에 시신이 넘쳐난다는 증언을 전하고 있다.

20일 마리우폴에서 대피버스를 타고 탈출한 주민은 NYT에 “시내는 폐허로 변했고 유리 파편과 전선, 시신들이 뒤섞여 널려 있다”면서 “러시아군은 시신을 학교와 아파트 인근에 매장했다. 딱히 묻을 데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마리우폴 외곽에서는 대규모 집단매장지가 위성사진에 포착되면서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은폐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미국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는 21일에 이어 22일 마리우폴 인근에서 확인된 암매장터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마리우폴 인근 마을 만후시와 비노라드네의 공동묘지 근처에서 구덩이들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특히 만후시에서 발견된 구덩이는 시신 9천구를 매장할 수 있는 규모로 우크라이나 당국은 추정한다.

마리우폴에서 실종된 주민들도 속속 나오면서 사망자 규모는 더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실종된 마리우폴 주민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마리우폴 라이프’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사이트에 실종자의 이름과 주소, 출생일, 최후 목격지 등을 입력하면 ‘집단지성’을 이용해 실종자 현황을 같이 파악하자는 취지다.

이용자들은 업데이트된 실종자 현황을 확인할 수 있고, 게시글을 올린 사람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이 사이트에서 현재 올라온 실종자는 1천명에 달하며, 피란 현황도 1천여건이 기록돼있다.

한 게시글에는 “엄마를 찾습니다. 가벼운 재킷과 흰색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고 뇌졸중 이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노인 여성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이 사이트는 마리우폴 주민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드미트리 체레파노우가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주민들을 돕고자 직접 만들었다.

그 자신도 실종된 친구 정보를 올린 지 몇 시간 이후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마리우폴에 대해 “21세기에서 가장 큰 전쟁범죄가 마리우폴에서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려는 시도조차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마리우폴에 시민 10만명이 남아있다며 러시아에 이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앞서 양측은 마리우폴에서 여성과 어린이, 노인을 대피시키기 위한 인도주의 통로 설치에 합의했지만, 합의 당일 마리우폴에서 피란민을 태우고 도시를 빠져나간 버스는 4대에 불과했으며 이후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대피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은 23일 우크라이나군의 마지막 저항거점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