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도입에 관한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징벌적 손해배상보다는 적절한 손해배상 산정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 원장 권태신)이 10월 26일(수) 오후 2시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확대도입의 쟁점과 과제’세미나를 개최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와 법체계가 유사한 유럽연합이 미국식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을 포기하고 그들의 법문화에 적합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듯이 우리도 체질에 맞는 제도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도입 부작용 커, 법원의 손해배상 산정기준 정상화가 정공법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두얼 명지대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의 도입은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법체계 자체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우려를 가지고 있고 최근 하도급법 등 일부에서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전혀 기대효과에 못 미치고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다양한 법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과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했다.

김 교수는 “법원의 손해배상 산정기준을 정상화하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정공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법원은 민사소송에서 전보적 손해배상, 즉 실제로 발생한 손해를 포괄적으로 배상하는 것을 보상액 산정의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그 기준이 국민의 눈높이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학계나 정책입안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보다는 올바른 손해배상 산정 기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문상일 인천대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활용하고 있는 나라는 일부 영미법계 국가 외에는 거의 없고, 이들 나라에서 조차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데 굳이 법체계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도입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황인학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무리하게 확대 도입하기보다 손해의 기준과 범위에 피해자의 기회비용과 거래비용의 경제학적 비용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법원의 실무가 개선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개선방안”이라고 말했다.

◇EU도 포기한 미국식 집단소송제 대신 현행 선정당사자제도 개선이 바람직

한편 집단소송제 확대도입과 관련해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유사한 유럽연합(EU)에서 지난 10년 간 진행됐던 집단소송제 개선논의와 그 결과물로 2013년 6월에 발표된 권고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외신청(opt-out)을 하지 않는 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잠재적 피해자들에게까지도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미국식 집단소송제(class action)는 피해자 집단이 명확히 확정되지 않아 무익한 소송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EU논의에서 배제됐다는 설명이다.

신 실장은 “미국은 유사한 법적보호 수단을 갖춘 유럽보다 GDP에서 차지하는 분쟁해결비용의 비율이 3배 가까이 높은 국가”라며 “우리나라에서 미국식의 제외신청형(opt-out)이 집단소송제의 전형(典刑)인 것처럼 인식되며 법안이 제출되고 도입이 논의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가입신청(opt-in)을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현행 민사소송법상의 선정당사자(選定當事者)제도도 집단소송제 유형 중 하나인 만큼 미국식 제도의 도입보다는 해당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의 집단소송제 도입논의는 미국식 모델만을 고집하고 있는데 이러한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입법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대식 서강대 교수는 “현행 선정당사자제도의 경우 원고 모집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고 복잡하다는 점이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소송 제기 의사가 없는 피해자까지도 굳이 소송에 자동적으로 참여시키는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세미나의 좌장을 맡은 김선정 동국대 교수는 “현재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견상 강력해 보이는 제도들이 많은 사회적 비용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소비자 보호에 기여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