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사건이 집중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이번 사태가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부 공인중개사의 범행 가담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임대차 계약에 관여하는 중개인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인천시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가 예상되는 가구는 미추홀구에서만 모두 2천479채로 이 중 1천523가구(61.4%)는 임의 경매가 진행 중이다. 이들 공동주택은 대부분 구도심인 숭의동·도화동·주안동 등지에 몰려 있다.

이 일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들은 전세사기 주범인 건축업자 A(61)씨 일당의 사업이 당초부터 높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지역은 2010년대 들어 각종 규제 완화가 이뤄지며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 등 소규모 재건축이 성행했는데 그 중심에 A씨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A씨는 종합건설업체를 통해 소규모 아파트나 빌라를 새로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갔다.

공인중개사 김모(47)씨는 “A씨와 결탁한 공인중개사들은 컨설팅 업체나 중개 보조원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며 “종종 손님들이 괜찮은 게 맞냐고 물어보던 신축 건물은 모두 은행 대출을 낀 매물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인 박모(42)씨도 “잘못 들어갔다가는 경매에 넘어갈 위험성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얘길 해봐도 10명 중 1∼2명을 빼면 결국 A씨 일당이 소유한 집을 선택했다”고 기억했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사들은 당시 근저당권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 없다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책임을 지겠다는 ‘이행보증서’까지 작성했다.

건축업자 A씨와 함께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공인중개사는 6명이다. 아울러 다른 공인중개사 3명도 같은 사건의 공범으로 수사를 받고 있어 모두 9명의 중개인이 범행에 얽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공인중개사는 A씨 보유 주택이 2천700여채까지 늘어나는 동안 월급 200만∼500만원과 함께 성과급을 받으며 세입자를 끌어모았다.

이를 놓고 업계에서는 공인중개사 자격 기준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부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중개인은 “이번 사건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얼마나 쉽게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악성 중개인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책임 중개와 자정 노력의 필요성에 대한 내부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라이선스 취득 기준이나 자격 유지 조건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현재까지 범행에 가담한 중개인 9명 중 재판에 넘겨진 6명은 인천시의 행정 처분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운영하던 부동산을 모두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시는 재판 결과에 따라 공인중개사법 위반에 의한 처벌이 확정되면 이들 중개인에 대한 자격 취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징역형 이상의 결과가 나오면 자격 취소 조치를 하게 된다”며 “그 외의 경우에는 추가 검토를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