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한국 채권을 대거 사들이며 이달 순매수 규모가 11조원을 넘어섰다.

30일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전날까지 외국인은 원화채권을 총 11조941억원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월별 외국인 순매수 규모로는 지난해 6월(12조753억원) 이후 최대 기록이다.

외국인이 이달 순매수한 원화채권 종류를 살펴보면 국고채(7조5천억원)와 통안채(3조6천억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7월 외국인의 원화채권 잔고는 230조원대 수준까지 올라갔으나 이후 미국의 통화정책 압박과 국내 레고랜드 사태 등이 겹치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 말 외국인 보유 국고채의 만기가 대규모로 도래했지만 이후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잔고는 계속 줄었다. 지난 1월에는 순매수 규모를 줄이는 것을 넘어 아예 3조4천억원어치를 순매도하기도 했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외국인 원화채권 순매수 증가의 주된 배경으로 차익거래 유인 회복을 꼽았다.

실제 이달 들어 외국인이 주로 사들인 원화채권은 만기 1년 이하(총 7조1천500억원어치)의 단기물이다. 또 시기상으로는 SVB 사태 발생 직후인 3월 셋째 주부터 집중적으로 순매수에 나선 것이 확인됐다.

결국 SVB 사태 이후 은행 시스템 리스크가 불거진 것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완화 기대감으로 연결되자 원화채권 매수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SVB 사태와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로 글로벌 중앙은행의 추가적인 과잉 긴축 정책에 대한 우려가 완화된 점이 외국인 원화채권 순매수 확대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한국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일부는 보유한 달러화를 담보 삼아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빌린 뒤 국고채·통안증권 등에 투자한다. 이때 투자 대상인 원화채권의 금리와, 원화 조달비용 간 가격 차를 이용해 이익을 얻는 것이 차익거래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 이후) 미국의 최종금리에 대한 예상치가 낮아지고 조달 금리도 낮아지면서 외국인의 차익거래 유인이 높아진 것”으로 봤다.

이처럼 현재는 한국 채권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견고하지만 향후 이탈 리스크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채권에 대한 신뢰도가 견고한 상태”라면서도 “만일 한국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해 부동산 및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릴 경우 외국인에는 큰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