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의하게 상한 음식을 먹었든지, 심각한 감염증에 걸렸든지 사람은 누구나 메스꺼움을 느낄 때가 있다.

위(胃)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그런 불쾌감은 몸 안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이며, 보통 구토를 유발한다.

다행히 메스꺼움은 대부분 잠깐 그러다가 그친다.

하지만 화학치료를 받는 암 환자 등에겐 메스꺼움이 만성적인 고통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메스꺼움이 집중 치료를 방해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미국 하버드(HMS) 의대 연구진이, 메스꺼움 유사 반응(nausea-like responses)을 조절하는 생쥐의 뇌 신경세포(뉴런)를 찾아내고 이런 세포들에 어떤 유전적 특징이 있는지도 밝혀냈다.

이들 뉴런을 흥분시키면 독소 등에 노출되는 것과 상관없이 메스꺼움 반응을 일으켰고, 이들 뉴런이 없으면 독극물에도 메스꺼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버드의대 블라바트닉 연구소의 스티븐 리벌레스 세포 생물학 교수 연구팀은 최근 이런 내용의 논문을 저널 ‘뉴런'(Neuron)에 발표했다.

17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 발견은 더 정밀하고 개량된 메스꺼움 억제제 개발의 새로운 표적이 될 거로 기대된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리벌레스 교수는 “누구나 메스꺼움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만 분자적, 유전적 수준에선 많이 이해하지 못했다”라면서 “이번에 핵심적인 뉴런 유형을 확인함으로써 그 작용 기제를 연구하고 더 나은 조절법도 디자인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뇌간의 ‘맨 아래 구역'(area postrema)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

이곳은 혈액이 옮긴 화학물질이 뇌의 혈뇌장벽 밖에서 드물게 관찰되는 영역 가운데 하나다.

오래전부터 구토에 관여하는 것으로 여겨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혈액에 섞인 유해 물질이 이 영역에서 탐지되면 위험을 알리는 비상벨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영역에 존재하는 뉴런들을 단핵 RNA 시퀀싱 기술로 분석해, 유형별 유전자 발현 특징을 보여주는 ‘세포 유형 지도’를 만들었다.

뉴런의 유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GLP1R이라는 세포 표면 수용체를 발현하는 유형이 눈길을 끌었다. 이전의 연구에서 이 수용체는 혈당 및 식욕 조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팀은 염화리튬, 리포다당류, 식중독균 독소 등의 유해하거나 무해한 물질을 각각 다른 과일 향이 첨가된 물과 함께 생쥐에게 먹였다.

예상대로 식중독균 독소 등 구토 유발 물질과 짝을 이룬 과일 향에 생쥐는 강한 혐오 반응을 보였다.

GLP1R 수용체를 가진 뉴런을 제거하면 대부분의 물질에 대해 혐오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대로 GLP1R 뉴런을 흥분시키면 구토 유발 물질에 노출되지 않아도 강한 혐오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GLP1R 뉴런을 강제로 흥분시키는 건, 독성 물질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생쥐를 속여 ‘조건부 향기 거부'(conditioned flavor avoidance) 반응을 유도하는 것과 같다.

이는 GLP1R 뉴런과 메스꺼움 반응 사이의 강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연구팀은 강조한다.

GLP1R 뉴런은 뇌의 많은 다른 영역과도 연관돼 있었는데 이 중에는 통증과 혐오감의 조절 허브(hub)로 알려진 부완핵(parabrachial nucleus)도 포함된다. 부완핵은 뇌와 척수 사이의 신호 통로인 뇌교에 존재하는 신경세포 무리다.

또한 GLP1R 뉴런에선 GFRAL 등 다수의 다른 세포 표면 수용체도 발현했다.

그런데 다른 수용체가 발현하는 뉴런 그룹을 따로 제거하면 염화리튬과 리포다당류에 대해서만 혐오 반응을 일으켰다.

이는 뇌간 ‘맨 아래 영역’의 뉴런들 사이에서 유형에 따라 각기 다른 유해 물질을 탐지하는 일종의 ‘분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