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식량 사정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식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어서 주목된다.

지난해 태풍과 장마 피해가 주요 곡물 생산지인 황해남 북도에 집중된데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농자재 수입이나 식량 원조도 종전보다 어려워진 탓이다.

1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 “농업부문에서 지난해의 태풍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하여 현재 인민들의 식량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원회의에서 그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농사를 잘 짓는 것은 현시기 우리 당과 국가가 최중대시하고 최우선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전투적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공개적인 회의 석상에서 식량난을 인정하고 북한매체가 이를 그대로 보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현재 식량사정이 좋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농촌진흥청이 내놓은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 지표는 모두 ‘생산량 감소’를 가리키고 있다.

FAO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의 식량 생산량 추산치를 총 556만 1천t으로 예측했다. 쌀에 한정하면 211만3천t이고, 도정을 거치면 139만5천t으로 추정했다.

FAO는 식량 부족분을 85만8천t으로 추산하면서 수입이나 원조를 통해 해결되지 않으면 올해 8∼10월이 ‘혹독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촌진흥청이 추산한 지난해 북한의 쌀 생산량은 이보다 더 적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보고서에는 쌀 생산량이 202만t으로, 2019년에 비해 9.8%가량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벼 재배기간에 비가 많이 오고 일사량이 적었으며, 특히 태풍과 장마가 집중된 지난해 8월이 벼가 여무는 시기여서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농진청은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여름 수해의 영향을 적게 받는 가을보리 작황은 다소 늘었고, 콩류 생산량도 늘었지만 쌀 생산량이 줄면서 전반적으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가 조사한 북한의 쌀값 동향을 봐도 최근 들어 쌀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추세다.

매체는 지난 8일 기준 지역별 1㎏당 쌀 가격이 평양 5천원, 신의주 4천900원, 혜산 4천800원이라고 전했다.

이달 2일 쌀 가격이 평양 4천100원, 신의주 4천200원, 혜산 4천4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가격이 폭등한 셈이다.

지난 3월 초만 해도 쌀 가격은 평양 3천700원, 신의주 3천900원, 혜산 4천50원 등이었는데, 불과 석 달 만에 쌀값이 1㎏당 1천 원이 넘게 올랐다.

지난해 거둬들인 쌀이 올해부터 주민들에게 공급된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태풍과 수해로 인한 작황 부족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 보고서는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이 70만∼100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만한 부족량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신속히 해결하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눈앞의 식량난부터 해소하지 않으면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밝힌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발전 노선의 실행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더욱이 식량난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자칫 아사자가 속출했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상황이 재현돼 민심 이반이 커지고 나아가 체제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우려는 김 위원장이 당대회에서 먹는 문제 해결을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할 국가 중대사”라고 한데서도 엿보인다.

북한 매체들도 쌀을 두고 “우리의 힘이고 존엄”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자체의 힘으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성과적으로 다그쳐 나가자면 무엇보다도 식량이 넉넉해야 한다”고 지속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