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명제가 올해 극장가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되는 후속작은 높아진 기대치에 못 미쳐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범죄도시 2’가 팬데믹 이후 첫 천만영화에 등극한 데 이어 ‘탑건: 매버릭'(‘탑건 2’), ‘한산: 용의 출현’, ‘미니언즈 2’까지 속편들이 잇따라 약진하면서 속편이 또 하나의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들 후속작이 전편 버금가는 완성도와 새로운 흥미 요소를 갖춘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관람료가 인상되면서 평균 이상의 재미가 보장된 작품을 찾는 관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범죄도시 2’부터 ‘미니언즈 2’까지…전편보다 진화된 속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대로) ‘범죄도시 2’, ‘탑건 2’, ‘미니언즈 2’, ‘한산’

[각 배급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작은 지난 5월 개봉한 ‘범죄도시 2’였다. ‘범죄도시 2’는 전편 688만 명의 배에 가까운 1천269만여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13위까지 올랐다.

6월 22일 개봉한 ‘탑건 2’는 개봉 9주차인 현재까지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전날까지 누적 관객수는 786만5천여 명으로 팬데믹 이후 개봉한 외화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한산'(671만 명)은 역대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보유한 전편 ‘명량'(1천761만 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여름 한국영화 대작 네 편 중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미니언즈 2’도 전날까지 관객 221만 명을 모아 팬데믹 이후 애니메이션 중 최고 흥행작이 됐다.

네 작품은 모두 전편의 약점을 보완하고 관객 취향에 맞춰 진화한 모습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범죄도시 2’는 15세 관람가로 시청 등급을 낮춰 관객 폭을 넓히고 ‘케미'(케미스트리·궁합)를 활용해 코믹 요소 비중을 늘렸다. ‘탑건 2’의 경우 30여 년 전 개봉한 전작을 모르는 젊은 세대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매버릭(톰 크루즈 분)을 비롯한 팀원들의 비행 장면은 마치 전투기가 등장하는 게임처럼 관객에게 색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한산’은 ‘명량’의 신파와 애국주의를 걷어낸 절제된 연출이 돋보인다. 이순신의 주변 인물인 적장 와키자카(변요한)와 거북선을 설계한 나대용(박지환), 준사(김성규) 등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등 영웅 일변도에서 벗어났다.

전작에서 캐릭터성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은 ‘미니언즈’ 후속편은 미니언즈와 그루가 ‘6인의 악당’에 맞서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사에 보다 충실했다는 평가다.

◇ 비싸진 티켓값에 ‘모험’보다 ‘안전’ 추구

속편의 잇따른 흥행에는 관객들의 안전 추구 성향이 강해진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한 영화 시청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멀티플렉스 3사의 주말 일반관 티켓값이 1만5천 원으로 오르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된 작품에 관객이 쏠리고 있다.

속편은 전편에서 충분한 재미를 경험한 관객에게 일종의 안전한 선택지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 먼저 영화를 관람한 관객을 중심으로 퍼지는 ‘입소문’이 더해지면 흥행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는 ‘왜 굳이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영화 관람료 인상과 OTT 시청 보편화로 관객이 영화관에서 볼 영화를 좀 더 조심스럽게 택하는 만큼 앞으로도 ‘안전한 선택’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추석연휴 한국영화 신작 ‘공조2’ 한 편

관객 취향 변화를 감지한 업계도 배급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를 성수기에 내놓아도 더이상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여름 시즌에 절감했기 때문이다.

연중 최대 성수기인 7월 넷째주 수요일부터 8월 셋째주 주말까지를 비교해보면 올해 관객수는 1천956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천764만 명의 70.8%에 그쳤다.

다음 달 추석연휴에 맞춰 개봉하는 신작 한국영화는 ‘공조’의 속편 ‘공조2: 인터내셔날’뿐이다. 2017년 설 연휴에 개봉한 ‘공조’가 781만 명을 동원하면서 속편도 어느 정도 흥행 성적을 낼 것이라는 판단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여름 성수기 개봉한 ‘모가디슈’를 추석 연휴에 걸기로 했다. 확장판이나 감독판 없이 개봉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한국영화를 재개봉하는 건 이례적이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모가디슈’는 지난해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361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완성도에 비해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는 평가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이번 여름 시장을 통해 좋은 개봉작이 많이 나오면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진 것 같다”며 “‘공조2’가 ‘범죄도시2’처럼 너무 안정적인 선택지여서 경쟁작들이 가세하지는 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