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임금 삭감 폭이 크고 이를 상쇄할 만한 사측 조치가 미흡할 경우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회일 부장판사)는 KB신용정보 전·현직 직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 및 퇴직금을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총 청구액 5억4천100만여원 중 5억3천790만여원을 인용했다.

KB신용정보는 2016년 2월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고 정년을 기존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5세부터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성과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 연봉의 45~70%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소송을 낸 직원들은 회사 임금피크제가 아무런 보상 조치 없이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만큼 무효라며 적용되지 않을 때 받을 수 있던 임금과 퇴직금 차액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사실상 청구액 대부분을 인정, 직원들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른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지 않았다면 만 55세부터 기존 정년까지 3년간 300%의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적용 후 저성과자의 경우 55세부터 5년간 받는 총액이 기존 연봉의 22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의 시행으로 인해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됐다고 볼 수 있다”며 “근무 기간이 2년 늘어났음에도 만 55세 이후 받을 수 있는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손해의 정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임금 삭감의 불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사측이 업무강도 저감 등 조치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법원은 임금피크제의 구체적 시행 형태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앞서 KT 전·현직 직원들은 회사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며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6월 1심에 이어 올해 1월 2심도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