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왔다.

2011년 9월 미성년 자녀가 있거나 배우자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했던 전합의 판단이 11년 만에 일부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4일 배우자와 이혼한 A씨가 “가족관계등록부 성별란에 ‘남’으로 기록된 것을 ‘여’로 정정하도록 허가해달라”며 제기한 등록부 정정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자녀의 보호·복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단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성별 정정을 불허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성별 정정은 성전환자의 실제 상황을 수용해 공부(公簿)에 반영하는 것일 뿐 자녀와의 신분 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새롭게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부모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미성년 자녀를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것이라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인간은 누구나 성 정체성에 따른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고, 성전환자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인격과 개성을 실현하고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타인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런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기 위해 성전환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른 성을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를 가진다”며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근본적 권리로서 행복추구권의 본질을 이루는 만큼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동원 대법관은 다만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와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적합하고 사회 일반의 통념에도 들어맞는 합리적 결정”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가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에 한정해서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고, 현재 혼인 관계에 있는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남성으로 출생 신고된 A씨는 어려서부터 여성에 귀속감을 느끼다가 2013년 결혼 생활 도중 정신과에서 ‘성 주체성 장애(성전환증)’란 진단을 받아 호르몬치료를 받았다. 2018년엔 배우자와 이혼한 뒤 외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A씨는 이듬해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으나 1·2심은 슬하에 미성년 자녀들이 있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이 같은 1·2심 결정은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거나 배우자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2011년 전합 판례를 따른 것이다.

파기환송 전 2심은 “신청인의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도록 허용하면 미성년 자녀 입장에선 법률적 평가를 이유로 아버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뒤바뀌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감내해야 하고, 이로 인한 정신적 혼란과 충격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별 정정을 허용하면 가족관계 증명서의 ‘부(父)’란에 기재된 사람의 성별이 ‘여’로 표시되면서 동성혼의 외관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미성년 자녀는 취학 등을 위해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할 때마다 이 같은 증명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