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청기, 아이돌 등 일상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모국어인 우리 말은 물론 영어로도 쓰인 시집이 출간됐다.

북랩은 최근 한국어를 배우려고 시도하는 외국인이 시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히고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국내 독자는 한국어 시를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이중 언어 시집 <엄마와 양귀비>를 펴냈다.

이 시집은 모국어여야만 시어와 운율 등을 통해 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오랜 편견을 깨고 시집의 마지막 장을 영시로만 꾸민 데다 부모님, 부석사, 모국어를 테마로 한 연작 시를 선보이는 등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하다.

작가는 어학원을 운영하며 미국 월든대학교(Walden Unversity)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윤혜령 씨다. 미국 온라인 강의 사이트 ‘코세라’의 요청으로 강좌에 쓰일 자막과 영시 번역을 하던 중 시 창작에 눈을 뜨게 돼 지역문학회와 대학 협력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시창작 강의를 듣고 문예지를 통해 등단까지 하게 된 늦깎이 시인이다. 특히 그녀가 창작한 영시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미국에서 발표의 길을 열어준 미국의 시인이자 편집인인 ‘Koon Woon’ 씨 덕분에 그녀의 시는 국경을 넘나들게 됐다.

표제작 ‘엄마와 양귀비’는 평생의 농사일로 얻은 엄마의 통증과 통증 완화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양귀비를 연결한 작품이다. ‘보청기 살충제’란 시는 보청기란 말을 모르는 엄마가 딸에게 “너, 살충제(보청기) 갖고 가니? 내가 지금 필요하단다”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진 딸의 심경을 전하고 있다. 시집에는 절이나 불교 관련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부모님이 절에서 첫 인연을 시작하고 아버지가 한때 절에서 수행한 분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부석사 연작 시도 작가의 이 같은 불교적 지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기본적인 문학적 요소를 갖춘 랩을 하는 젊은 래퍼들에게서 시의 미래를 찾는다. 스타 연작 시는 그녀가 힙합 관련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쓰게 될 시리즈 물이다. 특히, 시집의 영어 제목이기도 한 ‘Epic Star’는 특정 래퍼라기보다는 그가 찬양하는 전지전능하고 서사적인 신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특히 전설의 래퍼 투팍을 기리면서 “한국의 힙합도 보통사람의 삶을 반영하는 문화적 다양성과 통합이 예술적으로 승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가 앞으로 써나갈 힙합적 정서와 운율을 차용한 시들이 한국 문단의 외연을 어떻게 확장할지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