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센 머리, 구부정한 자세와 느린 걸음걸이, 작게 떨리는 쉰 목소리까지. 오는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리멤버’ 속 이성민은 온전한 80대의 모습이다.

1968년생인 그는 실제 나이보다 30살가량 많은 80대 노인 한필주를 연기했다. 얼굴과 손의 주름 등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 촬영 내내 특수분장에만 하루 2시간 이상, 총 150시간이 넘는 시간을 썼다.

1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은 “내가 노인이 된 모습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인이 된 제 모습이)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제일 먼저 주위에 물어본 것도 ‘어색하지 않았냐?’였죠. 노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는지 제가 평소에도 무의식중에 이상한 자세로 다녔나 봐요. 나중엔 목디스크가 오더라고요. 촬영 끝나고도 한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영화 속 필주는 뇌종양 말기 환자다. 일제강점기에 친일 세력에 의해 가족을 잃은 필주는 60여 년이 지나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원수를 갚는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는 흐릿해져 가는 기억의 조각을 붙잡으며 복수를 위해 돌진한다.

이성민은 “개봉했을 때 ‘이제 와서 또 그 얘기냐’라고 할까 봐 우려는 했었다”면서도 “아직도 (과거 청산 문제가) 논란과 논쟁이 된다는 점에서 저희 영화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극 중 필주 곁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함께 아르바이트하던 20대 청년 인규(남주혁 분)가 있다. ‘운전만 하면 된다’는 말에 함께하게 된 인규는 필주의 계획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저희 영화는 그 시대(일제강점기)를 겪은 할아버지와, 그 시대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청년의 이야기잖아요. ‘같이 기억하자’는 게 영화가 주는 메시지 같아요. 평소에도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화합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합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남주혁에 대해서는 “필주라는 캐릭터에 관객이 몰입하도록 끌고 가는 건 남주혁”이라면서 “영화를 보며 ‘주혁이가 고생을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큰 몫을 해냈다”고 추켜세웠다.

‘리멤버’는 코로나19로 개봉을 미룬 끝에 약 3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이성민은 “늘 ‘언제 개봉하나’ 생각했는데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 “일반 시사회 객석이 꽉 찬 걸 보고 뭉클했다”고 말했다.

“3년 가까운 시간을 두고 영화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도 나더라고요.”

연기를 시작하고서 지금까지 별다른 휴식기를 가져본 적 없다는 그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형사록’,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공개도 앞두고 있다.

“직장인하고 똑같죠 뭐.(웃음) 제가 아닌 삶으로 살아온 시간을 계산해보면 아마 인생의 3분의 1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게 더 편했던 것 같아요. 가끔 어려운 장면이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배우는 그게 숙명이니까요.”